다른 나라로 이사와서 처음으로 돈을 벌었다.
물론 내 위치에서 당장 근사한 아니 볼품이 없더라도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는 없다. 텅빈 통장에 압박과 사면초가로 급행하는 이민정책으로(그외에 골치아픈 여러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겹쳤다) 여기저기 파트타임(여기서는 알바라는 말은 없다. 풀타임 혹은 파트타임이다.)을 정신없이 뒤지기 시작했고 스시집, 커피숍에 면접을 보러 다녔었다. 그러나 현재 학생이라는 것과 나이, 영어, 그리고 무경력은 나로 하여금 무덤을 파게 했다. 그래도 열심히 쑤시고 다녔다. 물론 volunteer도 빼먹지 않고(누군 하기 좋아서만 하겠는가. 다 인맥을 쌓고 한마디라도 더 하자고 주말도 없이 기름 빵빵하게 태우면서 다니지.) 다녔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 volunteer하는 곳 중 한곳에다가 푸념처럼 파산을 얘기했고 '나 취직좀 시켜줘요'라고 직접 나를 팔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가 철판 깔고 이런 말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한마디가 나오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다음날 이력서를 써 보라는 전화를 받고 영문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목요일 금요일 이틀만 일 하는 자리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돈을 줄지 안줄지도 몰랐다. 그냥 가서 잘보이라는 말밖엔 들은 것이 없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소개받은 곳으로 갔다. 유니폼은 어디있냐는 질문에 할 말이 없었다. 난 유니폼도 없는 간호사다. 겨우 남의 것을 빌려 입고 닥치는데로 혈관주사를 놓았다. (채혈과 주사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물론 찔리는 사람은 바늘이 다 같은 바늘이지 할지는 몰라도 하는 사람은 그 차이를 엄청나게 느낀다.) 그렇게 8시간이 지나갔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거울을 보았다. 간호사 유니폼을 입은 내가 있었다. 갑자기 울컥하게 발끝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내가 살아있음을 느겼다. 시험을 합격하거나 칭찬을 들을 때와는 다른 그 폭풍같은 느낌.
내가 "나"라고 인식하는 그 느낌이었다.
돈따위는 받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다. 행복했으니까. 내가 누군지 알았으니까. 지난 2년 몇개월 동안 어두운 구석에서 내몰려 있던 나를 봤으니까. 그렇게 다음날도 정말 최선을 다해서 일했다. 나보고 '날아다닌다'고들 했다. 그리고 남의 나라에서 처음으로 돈을 벌었다. 액수도 많았지만 '사람노릇'을 했기에 당장 죽어도 좋다는 그런 기분까지 들었다. 단 이틀이지만 정말 행복했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월요일에도 와 줄 수 있느냐고 하셨다. 그때 희열감이란. 뭐 파트타임이 되거나 한건 아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니고 일용직인게다. 그래도 좋다.
그곳에서 내게 말했다. 나는 일을 해야 사는 사람이라고. 맞다. 나는 그렇다. 세시간을 잔다고 해도 피곤하지 않으니까. 그게 내 천성이니까.
돌아오는 길에 한국 닭집에서 양념통닭을 샀다. 몇년만인가. 내가 돈 벌었다고 집에 비닐봉투를 흔들고 들어가는것이.......
이번 기회로 확실히 알았다. 내겐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이올린에 북마크하기